“수십년 간 불교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는거죠.”

8월11일 불교심리상담단체협의회장으로 추대된 조계종 불교상담개발원장 선업 스님이 최근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는 심리상담사 법제화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비되지 않은 법안은 사회적 효용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올해 발의된 심리상담사 법안은 모두 4개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에 이어 7월14일 정의당까지 ‘상담사법안’을 제출했다. 정치권의 법안 발의는 상담사 자격을 관리할 제도적 기반이 미비해 민간 자격증이 난립하고 있어 국가시험 제도로 자격을 부여해 상담 서비스를 높이겠다는 이유다.

실제 코로나19 유행으로 심리상담 수요가 급증하기도 했다.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 이후 우울증 진료인원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79만8794명)과 비교해 63.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 계산으로 치면 한 해에 130만명(추정치)이 넘는다. 

선업 스님 역시 ‘상담 질 관리의 중요성’과 ‘심리상담 제공인력에 대한 기준 마련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특정 분야로 편향된 법제화 추진 과정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민간자격임에도 국가자격 빈자리를 대신하던 한국상담학회와 한국상담심리학회는 법안 발의 전부터 주도권 경쟁에 들어갔고 여기에 대한의사협회까지 장외전으로 “법안이 현행 보건의료관계법령과 상충된다”는 입장을 보건복지부에 표명한 상태다.

법안을 둘러싼 단체 간 갈등이 첨예해지자 불교계도 두 팔 걷고 나선 것이다. 심리상담단체협의회를 꾸린 건 종교계 가운데 불교계가 처음이다. 

조계종 불교상담개발원장 선업 스님과 사단법인 한국명상지도자협회 상임이사 적경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서광 스님, 이필원 한국명상심리상담학회장, 안양규 한국불교상담학회장은 8월11일 불교심리상담단체협의회를 구성하고 “활동하고 있는 불교계 심리상담사들이 법안에 소외되지 않도록 공동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 선업 스님은 협회장으로 추대됐다. 

선업 스님은 8월18일 서울 서초동에서 열린 ‘한국심리상담관련단체협의회’ 간담회에도 직접 참석해 단체장들과 정보를 공유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선업 스님은 “오랜 기간 쌓아온 불교계 심리상담 체계가 와해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법안에도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표명했다. 

선업 스님은 또 불교심리상담의 강점은 ‘명상’에 있다고 설명한 뒤 “가톨릭에 ‘영성’이 있고 개신교에 ‘목회’가 있다면 불교에는 ‘명상’이 있다”고 강조했다. 스님에 따르면 불교계 심리상담 단체들은 동양의 명상과 서양의 심리상담을 융합함으로써 명상심리상담의 새로운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내적인 통찰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고 현실의 고통문제를 해결한다’는 모토로 어린이, 청소년, 성인을 위한 명상심리상담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다. 

선업 스님은 “불교심리상담은 명상으로 염정혜(정념·정정·정견)를 균등하게 개발하고 집중 통찰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돕는다”며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효율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론이 부처님 가르침에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선업 스님이 이끄는 불교상담개발원은 1990년부터 불교계 최초의 전화상담봉사기관인 ‘자비의 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자비의 전화는 자비심과 보리심을 활용한 상담 기법으로 내담자들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난해에는 자살예방의날 기념해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선업 스님은 “불교심리상담이 이미 심리적 복지분야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며 “법제화가 지혜롭게 추진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