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담습니다. 비움이 충만함입니다. 여러분들의 속상한 마음을 이곳에 담아서 비우겠습니다.”

조계종 불교상담개발원(원장 선업스님, 포교원 포교부장)이 8월20일 서울 금선사에서 진행한 자살예방 및 자살유가족을 위한 템플스테이에서 차 명상이 한창이다. 불교상담개발원장 선업스님은 참가자들에게 공양작법에 맞춰 발우공양을 하는 것처럼 차 마시는 법을 안내했다. 작법에 따라 찻잔을 펴고, 차 한 잔을 찻잔에 담아서 마신 후 찻잔을 씻어내는 모든 과정이 마치 마음속에 넘치는 여러 가지 감정을 비워내 다시 채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과 같다.

이번 템플스테이는 불교상담개발원이 서울시자살예방센터와 함께하는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살(자)사(랑하자) 프로젝트(이하 살사프로젝트)’ 일환으로 마련됐다. 살면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마음 돌아보기, 어루만지기’를 주제로 열린 템플스테이에는 20여 명이 참여해 자연 속에서 명상하며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은 1만3195명이다. 하루 평균 36.1명이 자살을 선택했고, 최대 14만 명이 유족이 됐다. 살면서 겪는 고통이 너무 커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갑자기 떠나보내면서 분노와 상실감, 죄책감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숫자다.

특히 유족들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후에 누구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살 생존자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분노를 마음에 품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적 편견이나 두려움에 자살 생존자임을 밝히지 못 하고 십수년 전 떠나보낸 부모를 생각하며 여전히 힘들어하는 자녀도 있다. 20대 꽃 같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젊은 아들, 딸을 가슴에 묻고 통곡의 시간을 보내는 부모도 있다. 사랑을 주고 싶어도 가족이 이미 없어서 느끼는 상실감, 화를 내고 싶지만 대상이 이미 사라져버리면서 생긴 분노는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지난 7년 동안 자살 유족들을 만나온 선업스님은 무턱대고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기보다 그들이 몸과 마음으로 전하는 내면의 소리를 먼저 들으려고 노력한다. 화를 꾹꾹 눌러 담고 살면서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곳을 찾아온 사람들이라 아무리 좋은 말도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와 원망, 죄책감을 안고 살며 스스로를 살피지 못하던 이들에게 선업스님은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라고 한다.

찻잔을 이용해 바디스캔을 하면서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이다. 우울함으로 세상을 등지고 싶은 마음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은 물론 사랑하는 이의 자살을 겪으며 충격을 받은 유족들 또한 자신의 마음이 내는 소리를 귀담아 듣고, 또 용기 내어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해보라고 권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마음속 감정을 비워내고 다시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기도 하고,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을 그려보며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하기도 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대부분 서울시자살예방센터를 통해서 신청한 이들로, 몇몇 참가자들은 2~3회 가량 참여하면서 안면을 익힌 사이기도 하다. 이들은 1년에 2~3회 정도 템플스테이를 해서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봄가을로 만나서 자연 속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며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직접적으로 전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유독 자살률이 높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2030 여성들이 급증하면서 사회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선업스님은 불교계 역할을 강조했다. “우울감 혹은 분노에 차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 또는 자살 유족들을 받아줄 장소가 필요하다”며 “천주교가 명동성당에서 정규모임을 하듯이 불교계도 전문가를 양성해 주요 사찰에서 자살자나 자살유족을 위한 모임을 운영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